나는 왜 이렇게 반응할까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왜 저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힘들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사소한 표정, 지나가는 비교.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그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는 감정이 된다.
나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틀’을 떠올린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각자가 가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간다. 그 기준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별 의미 없이 들었던 말들이 조용히 쌓이며 만들어진다.
“왜 이것밖에 못해?”
“잘했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그 말들은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지만 반복되면서 점점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그리고 어느 순간,그 말들은 하나의 기준이 되어나를 바라보는 눈이 된다. 나는 그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고, 그 기준으로 타인을 이해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너무 자연스럽다는 데 있다. 너무 오래 사용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내 생각인지, 누군가에게서 배운 시선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타인의 시선을 빌려나 자신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감정들도현재의 상황 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기준이 지금도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담자에게 묻곤 한다.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셨나요?”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익숙한 문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항상 비교에서 밀린다.” “사람들은 나를 좋게 보지 않는다.” 그 문장들은 사실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변화는 무언가를 바꾸려는 노력보다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
내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왜 같은 감정을 반복하는지.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반응을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물론 안다고 해서곧바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랫 동안 익숙했던 시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작은 틈이 생긴다.
이전에는 자동적으로 반응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잠깐 멈추어 묻게 된다. “이 생각은 정말 사실일까.”
“나는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그때, 조용히 떠오르는 말씀이 있다.
“너는 내 것이라.” 이 짧은 말씀은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기준과 부드럽게 부딪힌다. 나는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정의해 왔다. 잘해야 인정받고, 비교에서 이겨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를 다른 기준으로 부르고 계셨다. 성과가 아니라 존재로, 비교가 아니라 관계로.
어쩌면 믿음이란 무언가를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이해하는 것. 부족함이 아니라
부족함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나는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구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는가.
도르가의집 토론토 소장 정현숙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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