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생긴 물난리

글쓴이:배임순 날짜: 2005.03.12

 “가장 부드러운 물이 제 몸을 부수어 바위를 뚫고 물길을 내듯이 당신의 사랑으로 단단한 고집과 편견을 깨뜨려 물처럼 그렇게 흐를 수는 없을까? ... ... ...

물처럼 내모양 주장하지 않아도 당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뜻하시는 그릇에 담기기를 소원하는 유순한 순종의 물처럼 될 수는 없을까“ 

위의 시는 나로 시인이 되기까지 도와주신 김소엽 시인의 “물처럼 그렇게 살수는 없을까?”란 시의 일부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숙연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그 시 앞에 서기에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인가보다. 나는 살아가면서 삶의 고비 고비가 물줄기 같다고 느끼던 그 언제부터인가 물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접에 물을 부으면 대접모양 병에 부으면 병 모양이 되는 물처럼 어디든지 어울릴 수 있는 그런 편한사람이 되고 싶었다. 청년시절에 “내 모양을 지키며 살겠다.”고 도도하고 야무지게 말하는 나에게 “나는 모양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물처럼 살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던 젊은 전도사님 앞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없었던 그날부터 나는 물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특히 잔잔한 호수를 좋아하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빅토리아 호수는 내가 좋아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 그처럼 메마른 대지를 두고 혼자 아름답다니... 그래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까? 빅토리아호수가 세계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 만큼 고요와 평화스러움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나 아프리카 땅에서 물 때문에 고생을 한 우리에게 있어 그것은 무책임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아프리카는 물과 화장실만 해결되면 한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먼지가 풀풀 나르는 메마른 대지를 적시지 못하는 거대한 빅토리아 호수가 더욱 야속하게 느껴졌다.  

지난번 콩고에 여성사역 하러 갔을 때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호화로운 곳이었다. 언덕아래 석양이 지면서 노을에 물든 조그만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호수를 눈앞에 두고도 물이 없어 샤워를 못할 형편이었다. 어쩌다 물이 나오니까 모두들 좋아하며 샤워를 시작했다. 나는 체면을 차리느라 마지막까지 기다렸는데 (원래 동작이 뜨기도 하고 )샤워를 시작하여 몸에 비누칠을 하고 머리를 막 행구고 나니까 물이 끊어졌다. 어쩔 수없이 그냥 타올로 닦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번에는 물을 대야에 받아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날 모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는 틈을 타서 내가 먼저 샤워를 하고 다음사람을 위하여 물을 틀어놓았는데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물이 넘어서 건너편 방까지 새어들어 갔다. 나는 혼자 들어가 자다가 불려나와 그 물을 다 닦아야 했던 소동이 벌어졌다. 그 때 그 넘친 물이 얼마나 아까웠든지.. 그런 물난리를 겪은 나는 이번 우간다에 갔을 때는 머리를 잘 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이 좋은 머리를... ) 초저녁에 비어있던 드럼통에 밤이 깊어지자 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펌퍼로 물을 퍼 올려 호수를 대고 물을 받고 있었다. 나는 모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김집사님 옆구리를 찔러서 도둑같이 소리를 죽이며 몰래 밖으로 나와 둘이서 서로 물을 부어주며 시원하게 머리를 감았다. 그리고 타올을 머리에 두르고 방(방이라고 해야 학교교실 흙바닥이지만)으로 들어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하얀 타올에 황토물이 들어있었다. 아침에 본 드럼통 물은 찌꺼기가 아래로 가라 앉아 윗물은 맑은데 어제 밤 흙탕물에 그대로 머리를 감았으니 감을 때나 깨끗한 기분이었지 아침에 지고 나니 머리카락이 뻣뻣했다. “역시 어둠 속에 행하는 일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두움의 일을 버리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자.”하며 억지로 교훈을 얻기는 하였지만 어찌되었거나 물 때문에 어려움이 많은 우리에게 그리고 이 아프리카 땅에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호수의 속사정이 딱했다. 하긴 머지않은 날에 이 땅에 펌프를 설치하고 정수기를 놓으면 아프리카도 아름다워 지겠지. 그때 이 거대한 호수도 목마른 사람의 목을 축이는 물의 사명을 다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