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을 마라(Marah)라 하였더라.”
이사장 문성록 목사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출 15:22, 23)
‘마라’는 모세가 홍해에서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최초로 숙영한 곳이기도 하다(출 15:26 민33:8,9). ‘마라’는 수에즈 운하(the Suez Canal)의 동남쪽 72㎞ 지점의 ‘아인 하와라’('Ain Hawarah)와 동일시된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옛날의 ‘마라’ 지역이 현재 지명인 ‘Ayun Musa’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집트말로 ‘아윤’은 ‘우물’이란 뜻이고, ‘무사’는 ‘모세’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는 곧 ‘모세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서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였으나 ‘마라’에 이르러 물을 얻었다. 그러나 애타게 찾았던 그 곳의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이에 백성들은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며 마실 물을 달라고 불평하였다. 사실 마라의 쓴 물은 모세의 책임이 아니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 15:24).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하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해야 될지를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한 나무를 물에 던졌더니 그 쓴 물이 단 맛으로 바뀌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출 15:25) 일설에 의하면, 그 나무가 ‘쥐엄나무’(honey locust)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쥐엄나무는 염수(salt water)를 달게 하는 효력이 있다고 전해진다.
모세를 따라 여기까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찾았던 물이 써서 먹을 수 없게 되자,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그들은 당면한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대안 마련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인간의 간사하고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쉽게 동요되어 되풀이되는 어리석음을 표출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들은 원망을 쏟아내기 전에 종용히 기다리며 지도자 모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옳았다. 그들은 직전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능력으로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널 수 있었고 그들을 추격하던 바로의 병거와 군대가 홍해 가운데 잠기는 것을 친히 목격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출 15:4).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마라의 쓴 물을 단 맛으로 바꾸어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신 후에 그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여호와로부터 치료를 받지 못한 백성은 ‘마라’의 쓴 물과 같이 목말라 애태우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그러했다. 그들은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그와 같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깡그리 잊어버렸고, 그 기적을 베푸셨던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는 기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모세를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어리석고 불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책망대신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 15:26)고 자상하게 위로의 말씀으로 다독여 주셨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오늘도 마라의 쓴 물과 같은 우리들을 향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에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