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을 넘어 행동하는 사람들
금세기에 최고의 지성 ‘제러미 리프킨’은자신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21세기는 어느때보다 공감이 중요시 되는 시대라고 강조하면서 인류가 함께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의 가장 행복한 지혜자는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쓴 서신서에 “서로”라는 단어는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서로는 “공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브리 기자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시는것을 넘어 체휼하셨다고 말씀하신다. (히4:15)
이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말로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요. 친히 몸소 그 사랑을 실천하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이는 곧 공감에서 동참으로 행동하신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인 중에 흔히 말하는 교인이 있고 신자가 있다. 이 둘은 엄격히 구분하면 다소의 차이가 있는데, 그 중 한 부분이 “아멘”에서 머무른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감동이 오는데, 감동으로 멈춰버린 것이다. 이 사람은 교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중 신자는 다른다. 신자는 아멘에서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듣고 배운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즉 아멘을 넘어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개신교 성도중에 특별히 장로교인들은 바울이 말씀하신 이신칭의(갈2:16)에 대해서 분명하게 아멘을 한다. 그런데 행함으로 그 믿음의 온전해지는 (야2:17)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믿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소 약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지난5월에 이곳 도르가의 집
PA상담 교육센터가 세워지면서 부터 나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를 더 깊이 체험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도르가의 집이 세워진 목적을 붙잡을 때 더욱 그렇다. 사도행전 9장 36절 이하에 나오는 욥바의 여 제자 다비다는 도르가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이 여인은 선행과 구제를 심히 많이 했다고 소개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도르가의 집이 세워진 이유이며 목적인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의 동역자들을 보내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최근에는 필라델피아 요크 요양원이라는 곳에서이제 연세가 들어서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많은 것이 부족하여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도르가의 집을 사용하시는 것은 “아멘을 넘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시선은 말로 아멘하는 곳이 아니라 행동으로 아멘하는 곳에 머무를 것이다. 우리 도르가의 집에 주님의 시선이 항상 머무르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도르가의 집 PA 상담교육센터 소장 이경종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