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매 맞고 있는 아이를 만나다

나는 아버지가 바로 내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 내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왜 저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으셨어요? 교회나 주변 사람들에겐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버지께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중에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한 대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목침 위에서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있던 내가 보인 것이다. 내가 느닷없이 엉엉 소리내어 울자 인도자가 “무슨 장면이 떠오르냐”? 고 물었다. 나는 “ 이버지가 나를 때리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할머니는 주일이면 새벽부터 일어나 참빚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리시고는 다림질을 하셨다. 할머니가 다리는 것은 전날 새것으로 바꿔둔 10월짜리 지폐 6장 이었다. 하얀 봉투에 빳빳해진 지폐를 한 장씩 넣어두고는 손자 6남매가 “ 교회 다녀오겠습니다” . 하면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주일 헌금 이었다. 헌금은 커녕 도시락도 제대로 못 싸오는 친구들이 수두룩했던 그 시절에 10원이면 무척 큰 돈이었다. 그날도 하얀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옆집 사는 친구 녀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교회로 가던 중 이 친구가 달고나 파는 아주머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제은아, 달고나 먹어봤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다!” 라며 입맛을 다셨다. “ 그래? 나는 못 먹어봤는데”. “야, 그 맛있는 걸 못 먹어봤단 말이야? 우리 딱 1원어치만 먹어보자. 너 1원, 나 1원,” 설탕을 녹여 베이킹파우더로 부풀린 달고나의 달콤한 향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헌금 봉투에서 10원짜리 지폐를 꺼내고 말았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받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당시 주일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출석을 했다는 대답과 함께 헌금을 갖다 내도록 되어있었는데 늘 빠스락빠스락 하는 흰 봉투를 갖다 내던 내가 잔돈 봉투를 내면 당장 눈에 띄어 추궁을 들을 게 뻔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달고나가 단지 쓴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주일 학교에서 출석을 부르는 도중 도망치고 말았다. 산에서 한참을 놀다가 예배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갔다. 일요일이면 항상 교회 신자들로 시끌벅적하던 집안이 그 날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불안했지만 ‘설마 나 때문일까’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순간 부엌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뛰쳐나와 내 등을 두들기면서 말했다. “ 아이고 제은아, 어떡하면 좋으냐? 이제, 넌 큰일났다. 아이고, 제은아!”  안방에 들릴세라 낮춘 음성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 왜? 엄마, 무슨 일인데?” “무조건 빌어라. 아버지께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 그리고 절대 거짓말은 하지 말아라. 아버지 성격 알지? 그냥 무조건 정직하게 말하거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