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자기 사랑 노트 – 가족 안에서의 역활     P96-101       May.  2022

            중독은 상처로부터 비롯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이나 일로 그것을 잊고자 하는 경우를 본다.  누구에게는 그 방편이 술이 되고, 누구에게는 낚시가 되고, 누구에게는 섹스가 된다.  어떤 것을 진통제로 삼든, 그 공통점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점점 심해지면 그 진통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되고 만다. 내면이 약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뭔가를 붙들지 않고서는, 즉 무언가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중독의 뿌리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과의 ‘관계’로 부터 꼭 받아야 했지만 받지 못해서 충족되지 않은 욕구와 미해결 과제로 인한 자기 내면의 공허함(이 상태는 마치 구멍 뚫린 컵과도 같다) 을 다른 외부  것에 의존하고자 하는, ‘관계’에 있어서의 ‘의존dependence’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정작 중독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다만 드러나는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에 실패하곤 한다. 중독의 핵심 문제는 ‘병리적 의존 관계’ 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함과 결핍감을 채워줄 대상을 찾아 사방을 헤멘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이 “얼마나 멋진 상대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거나, 자신의 불행 또한 “내가 저런 인간을 만났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 둘 다 자기 자신의 행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을 다른 사람에게 두고 있다는데 그 공통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무엇인가를 소유하는 것이 결핍감을 채워주는 길이라 믿으며 열심히 돈을 모은다. 좋은 차나 집, 그밖에 갖고 싶은 물건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자신의 행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 특별한 단체나 모임에 소속되는 것을 통해서 결핍감을 채워보려는 사람도 있다.

             심리학자인 로버트 파이어스톤 Robert Firestone은 <환상적인 유착 The Fantasy Bond>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환상적인 유착은 모든 인간의 심리 체계에서 핵심적인 방어 기제로, 인간이 자신의 감정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못할 때면 다른 사람이나 어떤 경험, 소속 혹은 특정한 물건 등과 자기 사이에 그런 유착적 관계가 존재할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방어하기 위한 환상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단지 착각일 뿐이며, 사실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심리학과 신학의 통합 연구와 강연으로 널리 알려진 가족 치료사 존 브래드쇼 John Bradshaw 는 이러한 환상적 유착 가운데 대표적인 증상을 가리켜 ‘동반 의존성 co-dependence’ 이라 부르며 이것을 일종의 중독 상태로 분류, “자신의 실체를 잃어버린 상태” 라고 설명한다.  

             원래 동반 의존성이라는 용어는 알코올 중독자를 둔 가족을 연구하는 데 한정해서 쓰던 말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가족 문제를 가리킨다.  예컨대 가족 중 한 사람인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라면 그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알코올에 대해 동반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족 안에서는 가족 구성원 각각이 가족이라는 체계의 균형 유지를 위해 개인의 고유성을 포기하고 필요한 역할을 떠맡게 된다.

             알코올 중독자가 있는 가족 안에서 어떤 아이는 가족의 품위 유지를 위해 영웅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가족에게 필요한 정서적 따뜻함을 위해 유모 역할이나 대리 배우자 혹은 가장 역할을 맡기도 한다. 또 가족 체계가 분노와 고통으로 황폐하게 되면 가족 중 어떤 아이가 희생자 역할을 떠맡으면서 가족의 모든 분노와 고통을 껴안기도 한다.

             내가 아는 한 부인의 이야기이다. 친정어머니가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 부인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수발을 드느라 웃음 한 번 짓고 살 여유가 없었다. 잠시만 눈을 떼면 119에 실려 갈 정도로 술독에 빠져버리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10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어머니의 술주정에 울며 하소연도 해봤지만 그러면 술을 퍼마시는 통에 제대로 말도 못 꺼내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한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이제 지긋지긋한 술 냄새 안 맡고 살겠다 했더니 웬걸, 남편은 더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날이면 날마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그녀를 폭행하고 폭언을 일삼았다. 결혼 전엔 어머니의 술주정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다 이해해 주는 것 같던 남편이 오히려 더한 가해자가 되어버리자 그녀는 삶의 희망을 잃었다. 네 살밖에 안 된 어린 자식 때문에라도 참고 살려고 했지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고생했는데 어쩌다 남편까지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단 말인가.

             알코올 중독 환자는 배우자와 자녀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영적으로 상처받은 자녀들은 자녀들은 자존감이 아주 낮아져서 자기 자신이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서는 이 부인처럼 배우지도 자신처럼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을 선택하기가 쉽다.  서로의 상처나 아픔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공감 할 수 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결혼은 위로가 되기는커녕 더 심한 상처를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상처를 보면서 “우리는 천생연분이야. 어쩌면 당신하고 나하고는 이렇게 비슷하지?”하고 감동 하지만,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 아이’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그들을 위한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도울 수잇는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 Alcoholics Anonymous’의 머리글자를 딴 A.A. 그릅이란,ㄴ 모임과 ‘알코올 중독 가정에서 자란 성인아이들을 위한 모임 Adult Childrem of Alcoholics ‘의 머리글자를 딴 ACoA 모임등이 활동하고 있다.  www.aaKorea.co.kr 에 들어 가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부모가 늘 술 마시고 주정하는 것만 본 자녀들은 어린아이로서 욕구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내면에 꾹꾹 눌러 담아뒀다가  성인이 되면 내면에 눌러둔 욕구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터져 나오면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중독의 정의가 확대, 넓은 의미의 중독들(활동, 감정, 생각) 까지도 여기에 포함하게 되면서, 모든 역기능 가족들이 동일한 동반 의존 구조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약물 남용, 근친상간, 폭력, 일중독, 성 중독, 식사 장애, 종교 중독, 부모의 분노와 질병 등 가족 내에 존재하는 강박적이고 중독적인 것들이 일으키는 수치심과 불안에 반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또 가족 체계가 요구하는 역할을 때로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을 포기한 채 떠맡게 됨으로써 거짓 자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무의식적인 가족 최면에 너무 오랫동안 빠져 있어 마치 자신이 하고 있는 ‘역할’이 실제 의 ‘자신’ 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내면의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뭔가 허전한 상태에 빠져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