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자기사랑 노트 – 드러난 상처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P131 - 137 September  2022

‘당신 마음을 압니다.’ 이 한마디를 듣지 못해서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과거에 지배 받고, 고통에 몸을 떤다. 한국에  돌아와 상담과 강의를 병행하던 때였다. 강의가 잇따라 있는 월요일 오전, 한 강의를 끝내고 다른 강의실로 향하는데, 복도에서 중년의 여인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저, 오 교수님인가유?”

진한 충청도 억양이 묻어났다. 

“네, 그런데요?”

그 아주머니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머뭇머뭇 눈치만 살피고 만나고 있었다.  나는 다음 강의 때문에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쳐 내고 있었다. 시계 바늘은 강의시간을 막 넘기고 있었다. 

“다음 강의가 있어서 가봐야 하거든요. 무슨 일 때문인지 빨리 말씀해 주시겠어요?” 

마음 같아선 당장 강의실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눈물을 닦아내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섣불리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고유… 남편이 이상해져서 교수임을 뵈러 왔시유.”

“예? 왜요?”

“지 남편이 지난주에 교수님이 하시는 내적 치유 프로그램엘 갔다 왔거든유. 근디 사람이 변했더라고유, 글씨.”

순간 가슴이 철렁헀다.

“무슨 문제라도…....?”

나도 모르게 목소리의 톤이 올라가자 아주머니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유, 그런 문제가 아니라유….… 그 양반이 원래 남들한티는 선한디 선한 양반인디.       지 한테만은 생판 그런 적이 없었시유.  지 맘을 죽었다 깨나도 모르겄다구 했거든유.   근디 글씨 지한테유. ‘내가 당신 맘. 이젠 다 알어.  그동안 몰라줘서 참말로 미안혀.  고생했지. 날 용서 해줘” 하면서 큰절을 하지 뭐유. 교인들한티도 큰절을 하면서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혀서 교회가 난리법석이었슈. 이것이 도대체 뭔일이당가요.  지는유 세상 사람들은 다 변해도 지 남편만은 안 변할줄 알았거든유. 남편을 그렇게 바꿔놓은 교수님이 도대체 어텋게 생기신 분인가 만나뵈러 온 거유.  교수님,  정말 고마워유.”

아주머니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그 아주머니의 남편은 목사였다. 그분을 만난 건 일주일 전 집단상담 프로그램에서였다.  그분을 만난 건 일주일 전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서였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모두 실명 대신 별칭을 쓰는데, 그분은 ‘나무’라는 별칭을 썼다. 누구보다도 점잖고 겸손하고 인자한 표정이 떠나질 않아 다들 ‘나무’를 잘 따랐다.

“자, 이번 시간은 아버지와의 사이에 있던 갈등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아버지에게 유감스러웠던 기억, 아버지한테 하지 못한 말,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씀을 해보세요. 나무님, 먼저 하시겠습니까?”

“아버지하고 갈등이 왜 없었겠습니까? 살면서 다 있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요. 기도로 다 해결 했거든요. 더구나 지금은 돌아 가셨고, 남은 감정도 없고…… 괜찮아요.”

“그러면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 계신다, 바로 나무님 앞에 계신다고  가정하고, 아버지께 한 말씀 해보시겠어요?  ‘아버지를 용서하신다’ 고요.”

대답이 없었다.    ‘나무’는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갈등 중인것 같았다.  한참 뒤 ‘나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평상시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렇게 점잖고 온화하던 ‘나무’가 심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난 못해!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어. 이 세상 사람 다 용서해도 딩신만은 못해!”

그리곤 나를 노려보면서 “당신은 지옥에나 가야 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인자하던 표정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나무’는 자신의 슬픔 속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야, 이 자식아! 내가 너를 용서할 것 같아? 나는 못해. 절대로 못해. 안 해!...... 이 나쁜 자식아. 니가 인간이냐?  술만 취해 들어오면 엄마를 자식들 보는 앞에서 쇠뭉치로 그렇게 때리고…... 으흐…...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서 엄마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데 , 구둣발로 불쌍한 우리 엄마 머리… 얼굴을 짓이기고…… 작두에다 엄마 머리를 넣고 ……. 엉엉…... 죽여버리겠다고……”

‘나무’는 말을 더 이상 잊지 못했다. 극도의 분노로 온몸이 벌게져 있었다.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하다가 뭔가 잡히기만 하면 찢고 뜯고 집어 던지는 것이 마치 지금 아버지를 죽어라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널 용서해” 마누라와 자식새끼들을 개 패듯 패고 짓밟은 너를 내가 용서해?  안 해, 이 나쁜 새끼야. 나는 하나님도 용서 못해. 왜.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왜 그 꼴을 당해야 돼? 우리 불쌍한 엄마가 도대체 왜, 무슨 잘못이 있다고,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화병으로 눈도 못 감았어. 어텋게 그렇게 허망하게 데려가느냐구! 난 하나님도 용서 못해……. 불씽한 우리 엄마, 엄마……흑흑.”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절규는 통곡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고통을 자신의 것인 양 느끼며, 어머니가 표현하지 못했던 분노를 대신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거야?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 개 같은 새끼가 술 처먹고 나를  붙잡아다가 두 손을 철사로 꽁꽁 묶어서 저수지에 데리고 가서는…… 내 머리를 물 속에 처넣고, 죽을 만하면 빼고, 죽을 만하면 빼고, 그리고 나보고  ‘너 같은 놈이 뭐 하러 이 세상에 왔냐’ 고?   나 보고 차라리 뒈져버리라고?             야, 이 새끼야. 네 놈이 날 낳았지, 내가 오고 싶어 왔냐,  왜 살려 뒀냐?  날 죽여라 죽여!  네 놈 때문에 내가 어떤 고통의 세월을 살았는지 이 세상 사람 아무도 내 맘 몰라,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하나님도 내 맘은 몰라.  몰라. 날  죽여라, 죽여!”     

‘나무’는 극도의 분노로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가족은 물론이고 하나님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절망, 그 원망과 분노가 자기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나무’는 자신의 가슴을 아프게 쥐어 뜯었다.

고통에 맞닥뜨리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어텋게든 도망치려 하거나 묻어 두려고 발버둥치지만 사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는 일부터 중단해야 한다.  용기를 가지고 가장 부드럽고 따뜻하게 고통을 대면하여 제대로 알아주고,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과연 어떤 것이 원인인지, 우울 때문인지, 병 때문인지, 인간 관계로부터  오는 상처 때문인지 , 또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한다.  고통의 원인을 알 수만 있다면 치유는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고통의 원인이 곧 고통을 벗어 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나무’ 의 절규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서, 나는 참가자들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무……..… 제가, 나무 마음 다 압니다.”

그러자 몸을 숙이고 흐느끼고 있던 ‘나무’ 가 갑자기 용수철처럼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고는 얼굴을 들이댔다.

“사기 치지 마.   니가 뭘 알아?  니가 내 맘을 어텋게 알아?”

멱살이 잡힌 채로 나의 얼굴도 눈물범벅이 되었다.

“나무, 제기 나무의 그런 고통을 압니다.”

“나기 내 맘을 안다고?  야, 신앙 좋은 아들로 태어나서 외국 나가 박사 학위까지 받고 온 니가 내 고통을 어텋게 알아 ? 넌 몰라.”

“나무…….. 지금, 제 가슴으로 나무의 그 고통을 느낍니다. “

‘나무’ 는  나를 뿌리쳤다. 내 고백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았다.

나는 ‘나무’를 끌어안았다. 그가 뿌리쳐도 또 끌어안고, 내동댕이쳐도 다시 일어나 다가앉았다.  수차례의 몸싸움 끝에  ‘나무’는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분노와 절망과 원망, 온갖 설움과 한을 다 쏟아내려는 듯 끝도 없이 펑펑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나무’를 놓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군가는 ‘나무’의 마음을 알아주어야만 한다는 생각,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를 지금 그냥 보내면 다시 절망의 시간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라도 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나님, 저는 이 사람 포기 할 수 없어요. 이 사람 꼭 다시 살게 해 주세요. 이대로 그냥 보내시면 않 됩니다. 이런 가슴 가지고 어텋게 목사로 살아가란 말입니까? 이게 뭐예요, 하나님! 이 사람 좀 어떻게 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내세요.’

나도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건 기도가 아니었다. 울부짖음이었다.  ‘나무’의 고통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고 있었다.  내게 매달려 우는 그의 등과 가슴을 한없이 쓸어 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내가 그렇게라도 하고 있으면 마치 그의 한과 상처가 씻겨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이 전부였다.  이것이 ‘나무’ 와의 만남이었고,  그의 상처에 대한 치유 과정이었다.  아픔이 컸던 만큼, 부인이 전해준 ‘나무’의 변화는 내게도 정말 감사한 것이었다.

상처의 치유는 복잡하고 어려운 외과 수술과는 다르다.  슬프고 외로운 이의 마음을 나누면 치유는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나무’는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어주길 외롭게 기다려 왔다.  그러나 그의 아내와 자녀들조차도 그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다.  ‘나무’ 는 속으로는 괴로워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면서 겉으로는 인자한 모습을 내보이기 위해 혼자서 고군분투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무’의 고통은 달라졌다.   상처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해도, 이미 드러난 상처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