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나눌
단 한 사람
보스턴의
메모리얼 병원은 하버드 대학 교수인 마크라는 유명한 의사가 일하는 곳으로 하버드 대학의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임상 경험을 쌓았다. 나 역시 그곳에서 전문 치료 과정을 밟을 기회를 가졌다. 이 병원은
특히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이 환자로 많이 찾아오는 곳이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세로 고생하고 있었다.
PTSD는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극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뒤 나타나는 정신 신체적 후유 증세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이다.
물론 누구나 큰 사건을 겪고 나면 6개월 정도는 순간순간 노이로제 같은증세를 일으킬 수
있지만, PTSD 환자들은 그 이상의 기간이 지난 후에도 극심한 불면증과 대인공포증, 불안 증세로 시달린다. 시체가 나뒹구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나
신체적 학대나 성폭행 피해자들 또한 이런 증세를 보이기 쉬운데, 마크 교수는 이 방면의 전문 치료가로
알려져 있었다. 대학 신문에 난 인턴십 광고를 보고 지원한 내가 처음 만나게 된 환자는 60대의 스미스였다. 그 역시 참전 군인으로 전형적인 PTSD환자였다. 지도 교수인 마크는 그 환자를 나에게 맡기기를 많이
망설였다. 스미스가 의료진은 물론이고 자기 가족조차 다루기 힘든 환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알코올 중독에다 성질도 괴팍하고 폭력적 이기까지 해서 다들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그는 수차례 입원과 퇴 원을 반복하면서 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었다. 교수에게 건네받은 스미스에 관한 파일 첫 장에는 자신감과 환희에 가득 찬 잘생긴 젊은 장교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밑에는 "전쟁중
부상으로 두 다리를 절단했으며, 후방으로 돌아온 뒤 심한 PTSD 증상에
시달리고 있음. 현재 정상적인 생활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심한
알코올 중독이고, 자살 기도를 수차례 시도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PTSD 환자들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알코올 중독에 그 역시 깊이빠져 있었고 자살도 네
차례나 기도했다. 병원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리려 한 적도 있어서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한시도 긴장을
풀수 없다고 했다.
나는
스미스와의 첫 대면을 위해 상담실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되자 상담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휠체어에 한 늙은 남자를 태우고 들어왔다. 스미스였다. 양
다리 모두 절단되어 바짓가랑이는 텅 비어 있었고, 술에 찌든 얼굴은 우울해 보였다. 사진 속의 잘 생긴 젊은 장교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러나 실망을 더
크게 한 건 스미스 쪽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재수 없다는 듯 침을 뱉고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동양인에 대한 지독한 욕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한때 잘 나가는 육군장교였으나, 이제는 아내와 자식조차 찾아오기를 포기한 술주정뱅이에 두 다리가 절단된 장애자, PTSD 말기 환자였고, 매달 정부가 주는 연금에 의지해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연금을 받기위해서는 상담 치료를 꼬박꼬박 받아야만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의
태도는 '내가 여기 오고 싶어 온 줄 아느냐. 어쩌다 내가
이런 신세가 되었나. 그것도 하필 저런 동양 놈한테 상담 치료를 받지 않으면 연금조차 못 받는 신세가
하는 투였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스미스는 귀 기울이지 않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지도 않았다. 그 후 몇 차례 상담이 거듭되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무력감에 빠졌다. 내가 아는 모든 상담학 기술과
지식을 동원해 열심히 하면 잘되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다시
돌아온 스미스와의 상담 날, 오늘은 스미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의기소침해 앉아 있다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기도를드렸다. '스미스의 고통을 나의 가슴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오직 그 한 가지만 기도했다.
기도 도중 큰형이
생각났다.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나중에 다리 하나를 잃어버리고
술에 빠져 살아온 큰형. 나는 어느새 형을 기다리는 기분이 되어 있었다. 그때 스미스가 들어왔다. 스미스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이고
무심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가 듣거나 말거나 큰형 이야기를 시작했다.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었는지, 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는지, 어떤표정으로 한국을 떠났는지, 그리고 의족을 달고 집으로 돌아온
날 집안 풍경이 어땠는지, 형이 그로 인해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지・・・・・・ 담담히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는 이미 상담 시간도 끝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나의 상처,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형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스미스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표정도 다채로웠지만 아!" "저런!" ""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눈 뒤 먼저 상담실을 나왔다. 가슴이 텅 빈 것도 같고,
시원한 것도 같고, 묘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음 상담 시간부터 스미스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조금식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속을 털어놓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변화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무척 우울한 얼굴로 스미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외로워.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나는 가족을 굉장히 사랑하는데, 자식 놈들은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아내도 나를 버렸어. 내겐 아무도 없어." (다음호에 계속)
데이브레익 대학교
오제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