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가의 집에서 마음의 상처 치유 공부를 하는 이유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세상 자체가 완전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사람 자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치유 되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개인의 역사에 갇혀 꼼짝 못한다는 것은 그 상처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는 뜻이다. 결코
상처를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은 상처받은 아이의 아픔으로 인해서 인생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설명으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상처로 인하여 처리되지 못한 정신적 감정이 마음속에 저장되면 그 감정은 우리 안에서 얌전히 앉아 있지 않는다. 저항이나 집착으로 인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것은 풀려나려고 애를 쓴다.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에너지 차원의 현실이다. 에너지는
우리를 그것 안에다가 가두어 놓기 위해서 반대 의지를 계속 가하게 된다. 지난 일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전에 부모나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이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을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다. 그때 받은 상처는 지금 어떤 사람이 자기 엄마가 소리를 질렀던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감정적인 문제가 되어 우리의 마음에 솟아오른다. 왜일까? 갇힌 에너지는 호시탐탐 언제든지 솟아올라 나오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두껍게
막아놓은 강물이 뚫고 나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을 편안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억눌러
놓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의지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모든 쓰레기를 안에다가 담아두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인체가 불순물을 배출하려는 것처럼 정신적인 불순물을 배출하려고
할 때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생각들의 근원을 추적해 볼 수 있다. 깨달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어떤 특정한 생각을 지지할 때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치유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도르가의 집에서 나눔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무언가와 연결을 시켜준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원형적인 심원함에 닿게 해 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깊은 내면과 연결시켜 주기도 한다. 여기서
자신의 놀라운 아이 원형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자 칼융은
우리 모두는 놀라운 아이의 원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놀라운 아이의 원형은 우리에게 정신적인 재생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변환에 대한 영혼의 욕구를 표현한다. 놀라운
아이는 추방당한 유아의 모티브에서 드러난 신화 속의 신성한 아이를 발견하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준다. 그리하여
우리 개인의 역사 속의 문자적인 아이를 극복하도록 해 준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추방당한 후 진정한
자기를 찾아 여행을 하는 영웅, 신성한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고통을 감싸 안고 치유를 받으며 폭력의 영향력으로부터 회복어가는 것이다. 내면아이
치유를 통하여 초기 고통에 대한 애도과정을 거치고 자신의 놀라운 아이를 발견하여 그 아이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도르가의집에서 내면아이
치유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뉴저지 도르가의
집 소장 배임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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