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나누며 가슴 깊이 들음
Deep Listening, Compassionate Listening
말하는 사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와 닿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만약에 듣는 사람이 “당신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아요”라고 고백할
수 없는 말이라면 아무리 큰 소리로 울부짖어 봤자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릴 것이며, 청산유수로 뽑아내거나
천사의 말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상담했던 사람들에게서 가장 흔히 듣게 되는 얘기는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나 자신은 그 점을 의식하지도 못했다”라든지 혹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또는 “그 사람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준다” “내 가슴 속을 확 열어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답답하다”는 등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의 문제로 말미암아 마음의 벽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마음과 마음 깊은 곳을 연결할 수 없게 된 바로 거기에 우리의 고통의 원인이 있다.
오늘날 모든 인간관계(하나님과 자연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문제의 공통적이며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문제’에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들음의 능력’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고통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누군가 그 고통을 깊이 들어주기만 한다면, 그래서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은 전혀 다른 의미로 승화 될 수 있다.
왜 어떤 말은 듣기에는 매우 그럴듯한데도, 혹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도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때론
골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이며,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씨앗이 될 수도 있는가? 그런가하면 어떤 말은 어눌하기 짝이 없는 듯 한데도, 단 몇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단지 곁에서 함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픈 상처를 치유케 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과연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바라고 노력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까?
그 차이는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지 않고는 마음에 가 닿을 수 없다. 온 정신과 마음을 다 집중해서 상대방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이 올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시작이 된다. 또한 말하는 사람이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무수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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