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보좌 앞으로

   바람이 스산한 오후, 이제 가을이구나! 싶은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도르가의 집이죠?” “그렇습니다.” “자원봉사자 필요하다고 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네. 반갑습니다.”이렇게 해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의 여정을 잠깐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열심히 일만 했었는데 암수술을 받고 치료 중에 있는 동안 시간적 여유가 있어 누군가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는 소리를 듣고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르가의 집’을 찾아온 자매는 암 환자 답지 않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들어왔습니다. 추석이 막 지났던 터라 그녀의 손엔 송편이 들려있었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권사님이 손수 만드신 송편인데 맛있어요.” 하면서 내놓는 송편에는 사랑이 오목조목 들어있는 듯 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들 받으면서 살아왔다고 말하는 이 자매는 자기를 사랑해 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그 어려운 처지에서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들을 생각하는 이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요즘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사람들의 정서까지 메말라 버려 틈만 나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웃으면서 다른 사람을 칭찬하며 자신을 복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기억에도 없고 엄마와 둘이서 힘든 세상을 열심히 살아온 그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암에 갈렸습니다. 수년을 암으로 고생하시던 어머니는 그녀가 19살 되던 해에 이 넓은 땅에 딸 하나를 달랑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 버렸습니다. 인생은 자신이 선택해서 산다고 하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선택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외로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남자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것조차 잘 살아지지 않아 헤어지면서 어린나이에 ‘이혼녀’라는 딱지까지 붙이게 되었습니다. 가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가정을 보지도 못한 터라 남편과의 관계도 불편할 뿐더러 문화도 언어도 다른 외국남자와의 결혼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인간은 약해질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보이지 않는 법칙에 따라 예수를 영접하게 된 그녀는 감동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직장암이라 창자 끝을 수술 하다 보니 용변을 볼 수가 없어 아랫배 쪽에 변 자루를 차고도 감사해 하는 그녀의 모습은 슬픔이 깊어져서 감사하는 아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아이처럼 살고 싶은 모양입니다.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처럼...

    세상살이가 어쩔 수 없이 고난의 길인데 우리의 고난은 기억해 주실 분이 계시기에 행복하지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당한 고난만큼 상처를 입고 이웃을 원망하며 많은 사람들을 원수로 만들면서 살아가는데 늘 고난을 유익으로 받아들이며 감사로 살아가는 우리자매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친척이라도 있고 이웃이라도 있어서 위로받고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국땅이란 사람을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집세를 몇 번 못 내더라도 집 주인이 찾아와서 소리를 지를지언정 쫓아내지는 않는데 이 땅은 법정에서 보낸 ‘마샬’이 나와서 가차 없이 문을 감가 버리니 오고 갈 데 없이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하는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위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욱 그분을 의지하며 우리서로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들이여!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