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가을의 다짐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여름 한 철 아프리카에서 보내는 나에게 여름은 그리 무덥지 않게 느껴지고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더군다나 이번 여름에는 아프리카에서 건강하게 돌아왔기에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가을을 기대했다. 그런데 10년 넘게 우리와 함께 사역해 온 자매님이 폐종양 수술을 받게 되어 우리의 마음은 무거웠다. 대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 시간 우리는 믿음의 훈련, 사랑의 훈련을 받았다. 힘이 들지만 필요한 시간, 마음이 아프지만 기대 가운데 그분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수술 시간이 다가왔다. 절대 암이 아니라고 믿었는데 수술 시간이 다가오자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폐암에 대한 상처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본능적인 불안감이 하나님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느끼게 한다. 수술실에 들어간지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소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몸이 떨렸다. 아직 사실이 밝혀 지지 않을 때 불안 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일에 대한 상처는 무게를 두 배로 가중시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곧 기쁜 소식이 왔다. 수술이 잘 되었고 암이 아니라는 소식에 지금까지의 불안과 함께 도사리고 있던 눈물이 와르르 흘러내렸다. 아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역시 당신은 우리의 하나님이 십니다. 암이 아닌 것도 감사하지만 만약에 의사가 조금만 방심해도 큰일 날 일인 것을.. 의사의 손을 잡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얼마나 감사했던지 몸의 긴장이 다 풀리고 지금까지 마음 조렸던 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폐렴으로 진단이 났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해 고생을 한 나에게는 그녀의 고통이 가슴을 찔렀다. 지난여름,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며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그 분께 마음을 올려드리기로 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당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려울 때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나는 나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녀의 가슴에 손을 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부탁 드렸다. 그 통증을 이길 힘을 주시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병에서 회복되도록...
그녀의 선행과 구제에 힘쓰며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려는 마음을 그분은 아신다. 그녀의 도움을 받은 우리들은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한 도르가의 도움을 받은 성도들처럼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들의 기도와 간청으로 살아난 ‘도르가’ 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회복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며...
사람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 자신을 아는 것 같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잘 정리하는 그녀를 보며 하나님은 그녀를 회복시켜 남은 날 더 아름답게 사용하실 것이라 믿어졌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한 우리의 삶, 잠시 잠깐 머물다 떠나는 세상, 어떻게 살아야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자신이 누울 곳, 한 평의 땅이면 족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계산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한 부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재산을 많이 모아 이제 잘 먹고 잘 쓰며 살고 싶은데 지금 그 생명을 데려가면 그 재산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 날에 하나님 앞에 자신 있게 설 수 있도록 그분의 은혜에 힘입어 생명을 살리는 삶 살기로 다짐하며 옷매무새를 야무지게 여미고 이 가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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