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랑 노트 - 춤추는 나무 P56-60
캐나다에 있을 당시 개척해서 장 나가던 교회의 성도들로 부터도 외면 당하고, 단 한사람 내 마음을 알아 주길 바랐던 아내마저 나를 등지고, 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상태여서 공부를 계속하기
힘들었을 때,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죽음 직전, 지금의 내 모습 이대로 괜찮다고 스스로를 긍정하고 받아 들이고 난 뒤 나는 다시 살고 싶어졌다. 약해질 때로 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온타리오 호숫가주변의
자연 공원을 산책 하며 다리의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 공원은 도심 한복판에 있었지만 깊은 산 속 같은 풍광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맑고 큰 호수를 중심으로 우람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이곳은 반나절 이상을 걸어야 웬만큼
둘러볼 수 있을 종도로 넓었다. 놀라운 것은 이 공원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몇백 년 전 주민들이 나무를 심고 물을 끌어들여 조성한 인공 공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온갖 동물들이 서식하고 희귀한 작물들이 많아서
동식물 채집과 연구를
위해 학자들도 종종 찾는 명소이다. 현명한 조상들이 후손과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생각하다 가장 훌륭한 선물을 택한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공원을 볼 때마다 인간이 세상을 살고 가면서 이 땅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는 했다.
그날도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공원엘 갔다.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쇠약해진 몸 때문에라도 빨리 걸을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마음이
참으로 평화로워 아무 생각도, 아무런 미움도, 아무런 욕망이나 목표도 없이 ‘걷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도 나의 마음을 흔들거나 흩뜨릴 수 없을 만큼 차분하고 고요했다. 다만 새들이 지저귀고,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창조적 영성이 숨 쉬는 깊은 숲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만을
한없이 기꺼워하고 있었다.
길가의 큰 버드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줄기가 늘어져서 땅까지 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곳을 지나려면 나무의
줄기 밑으로, 마치 커튼을 젖히고 지나가듯 해야 했다. 종종 보았던 광경이었는데도 그 날은 이상하리라만치 그 줄기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나는 나무를 바라보면서 흘린 듯 다가갔다.
그런데 그 순간 길게 늘어진 줄기들이 일제히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화창한 날에… 나도 모르게 “어! 나무가 춤을 추네. 나무가 춤을 춰” 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나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행복해하며 춤추는
나무의 마음이 전해졌다. 따뜻한 햇살을
온몸 가득히 빨아 들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눈이 열렸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무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나는 모든 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저귀는 새도, 분주히 돌아다니는
다람쥐도 참으로 예뻤다. 나무를 끌어 안는 순간 내가 나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내 다리는 나무의 뿌리가 된 듯했고, 머리에선 줄기가 나와 뻗어가는 듯했다. 나의 심장은 나무의 수액을
따라 한없이 위로 위로 솟구치며 강하게 펌프질을 해댔다. 길가에 쓰러져 상처 입은 나무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 나무가 겪은 아픔까지 전해져왔다.
그렇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가다보니 한 털보 할아버지가 혼자 공터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새와 다람쥐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깨며 다리에 온통 작은 동물들이 앉아 있었고, 그는 쉴 새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뭐하고 계세요?”
내가 다가가서 묻자 그는 “쉬잇!” 하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새들이 놀라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뭘 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글쎄요.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빙긋 웃었다. 입고 있는 옷은 누추했지만 눈매는 한없이
선해 보였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새하고 이야기하고, 다람쥐하고도 이야기
하고요.”
그의 해맑음이 고스란히 내개 전해져 왔다.
“그렇군요. 이 녀석들이 모두 당신 친구인가요?”
“예, 이 녀석들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때랍니다.”
나는 그의 평화가 오래오래 지속되기
바라면서 조용히 물러나왔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나에게도 살아있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존재들과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그날, 자연으로부터 받은 에너지가 나의 쇠약해진 몸과 영혼의 회복을 도운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자연은 내가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 가장 큰 치유자요 동반자 노릇을 해주었다. 늘 말없이 들어주고 넓은 품으로 위로해 주는 자연이 좋아 그 후로도 나는 힘이 들 때마다 가까운 숲 속으로 산책을 나갔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자연의 모든 것과 대화할 수 있다는것, 나무도, 바위도, 새도, 풀도 눈을 뜨고 보면 친구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상담 전문가가 된 뒤로 나는 이때의 경험을 살려 프로그램을 진행 할 때면 반드시 ‘자연 묵상’ 시간을 갖는다. 잠들기 전부터
아침 식사 전까지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데, 그 시간에는 자연 묵상을 한다. 아침을 깨워 소중한 것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높은 하늘에게 고개를 들어 “하늘아. 안녕?” 하고 인사를 나누면서 하늘의
미소를 느껴본다. 또 나무의 줄기며 이파리를 어루만지면서 나무의
숨결을 느껴보기도 한다.
“나무야, 안녕?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니?”
“돌아, 안녕? 추운 겨울 나느라 고생하진 않았니?”
“난 요즘 참 힘들어. 이럴 때 내가 어쩌면 좋겠니?”
돌에게, 나무에게, 하늘에게, 호수에게, 꽃들에게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풀리지 않는 삶의 고민들을 터놓고 나누는
시간이다. 내면의 고요한 상태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시간이다.
온 우주는 서로에게 반응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해보라. 만나는 사물마다 인사를 하고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라. 마치 자석이 달라붙기라도 하듯이 곧바로 반응이 올 것이다. 나무를 바라 본다는 것은 그저 나무 한 그루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바람도, 햇볕도, 새소리도, 하나님의 숨결까지도 그 나무 속에 깃들여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 나무를 보는 것이다. 밥 한끼, 물 한 방울에도 하늘과 땅의 숨결이 다 들어 있다. 우주는 자신 안에 우리를 치유할 힘을 갖고 있다. 원시적 영성과 치유의
에너지가 그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내 안에 이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 이 순간을 가장 멋있고 소중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밖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내 안의 세계는 변화 시킬 수 있다.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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